장면 — 가난과 생체실험, 모욕에 짓눌린 병사가 무너져가는 정신으로 세상을 향해 되묻는 장면.
연기 포인트 — 과장 없는 현실적인 말투 속에서 서서히 금이 가는 내면을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다.
독백 전문
예, 중대장님. 천천히, 천천히 하겠습니다.
…도덕이요? 예, 저는 그런 거 없습니다. 우리 같은 가난뱅이들한테는요. 돈입니다, 중대장님, 돈. 돈 없는 놈이 무슨 수로 도덕을 삽니까. 저 같은 것도 세상에 나올 땐 그냥 살덩이 하나로 나왔는데요.
우리 같은 것들은 이 세상에서도 불행하고 저세상에서도 불행할 겁니다. 천국에 가면 아마 천둥 치는 일이나 거들라고 하겠지요.
(사이)
중대장님, 살과 피라는 게 있습니다. 자연이라는 게요. 우리 같은 놈들은 도덕이고 뭐고, 자연이 시키는 대로 사는 겁니다. 저한테도 신사 모자가 있고 시계가 있고, 외투에 점잖은 말투까지 있다면야, 저도 도덕이란 걸 갖고 싶습니다. 도덕이란 건 분명 좋은 물건이겠지요. 그런데 저는 불쌍한 놈입니다.
(사이)
착하다고요? 예, 착해서 뭐 합니까. 세상이 이렇게 캄캄해지는데. 어떤 날은요, 눈앞이 깜깜해져서 거미줄이라도 붙잡고 매달리고 싶습니다. 만물이 멀쩡해 보여도 사실은 다 썩어 가는 거 아닙니까.
(주위를 둘러보며, 낮게)
쉿 — 들리십니까? 뭐가 움직입니다. 땅 밑에서요. 발밑이 텅텅 울립니다. 다 꺼져 있어요, 밑이!
(사이)
조용하다. 세상이 죽은 것처럼 조용해.
하느님, 이 세상이 대체 왜 이렇습니까? 사람이 사람한테 왜 이럽니까? 예? 누가 대답 좀 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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