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 사랑 없는 결혼에 이른 경위를 태연하게 고백하며 숨 막히는 권태를 드러내는 장면.
연기 포인트 — 무료한 말투 밑에 자기혐오와 파괴 충동을 서늘하게 깔아야 한다.
독백 전문
왜 하필 요르겐 테스만이었느냐고요? (짧게 웃는다) 판사님도 참 짓궂으시네요. 글쎄요. 저도 춤출 만큼은 췄다 싶었거든요. 시간이... 다 됐던 거죠. (사이) 그리고 테스만은, 뭐랄까,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잖아요. 성실하죠. 언젠가는 이름도 날릴 테고. 무엇보다 저를 얻겠다고 그렇게까지 애처롭게 매달리는 사람을 마다할 이유가 있나요. 평생 떠받들어 주겠다는데요. (사이) 사랑이요? 아유, 그런 끈적끈적한 말씀은 마세요. 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 집도 다 그렇게 된 거예요. 지난여름 테스만이 저녁마다 저를 집까지 바래다줬는데, 하루는 둘 다 할 말이 없어서 어찌나 곤란하던지. 마침 이 집 앞을 지나기에, 제가 그 딱한 사람을 구해 주느라 아무 말이나 던진 거예요. 이 별장에서 한번 살아 보고 싶다고. (사이) 진심이었냐고요? 전혀요. 그런데 그 말 한마디에서 약혼이 나오고, 결혼이 나오고, 신혼여행이 나오고, 이 집이 나왔어요. 뿌린 대로 사는 거죠. (창가로 시선을 돌린다) 판사님, 저는 가끔 저한테 재능이 딱 하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뭔지 아세요? 지루해서 죽어 버리는 재능. 이 삶을 견디는 재주는, 아무래도 타고나질 못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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